Thursday, 24 April 2008

영화감상문- 아름다운 비행

아름다운 비행’은 한 소녀가 거위들이 알에서 부화하는 것에서부터 따뜻한 남쪽 보금자리를 찾기까지, 거위들을 양육하고 훈련하는 내용을 다룬 영화이다. 극 중 주인공인 에이미는 여행 중에,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게 되면서 10년 만에 아버지를 만나 고향을 찾는다. 하지만, 엄마를 잃은 슬픔과 아빠와의 심리적 거리로 인해, 에이미는 학교 가기를 거부한다. 그러던 찰나 에이미는 개발업자들의 횡포로 미처 부화하지 못한 야생 거위알을 발견하게 되고, 아버지와 함께 그 거위들을 기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에이미가 거위들을 훈육하는 모습은 교육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거위들이 나는 법을 배우고, 남쪽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기까지의 과정은 교육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거위들이 훈육되어 신체적으로의 성장과 기술을 습득을 통한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성장은 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철저한 에이미와 아빠의 계획아래, 지속적인 훈련으로 걷는 것에서부터 나는 것으로, 단거리에서 장거리로, 단계별 난이도를 한 단계씩 높여가며 교육했던 것 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교육은 점진적이고 계속적인 과정이며, 일정한 순서와 방향성을 갖는 발달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의 발달적 특성에 따라 교육의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우리의 교육대상인 인간의 발달과정과 그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지식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교육은 통제하고 조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교육의 현장은 말 그대로 자연현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모든 상황을 예측할 수 없고, 이론을 바탕으로 한 적절한 대처를 해야 한다. 어쩌면 과학적 이론을 자연현상인 교육현장에 적용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말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 과학적 이론을 적절한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것은 교사의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교육의 현장에서 교사가 겪게 되는 어려움 중의 하나는 학생들의 수준차이이다. 학교는 사회적 집단으로 다양한 개개인으로 구성 되어있기 때문에, 수업의 수준을 정하기도 어렵고, 신중한 계획을 세웠다 해도 뒤쳐지는 학생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 영화 속에도 비춰진다. 다리를 절고 잘 날지 못 하는 ‘이고루’라는 이름을 가진 거위가 등장한다. 이 때, 에이미는 거위를 포기하거나 방치해두지 않고, 오히려 “너도 가야지.”하며 이고루를 격려했다.
사실 에이미가 거위들의 이름을 지을 때 잘 걷지 못하는 특성을 가진 이고루의 이름을 ‘절름발이’라고 하려 하기도 했지만, 삼촌의 조언에 따라 부정적 이름이 아닌 좋은 의미를 담은 이름을 붙여주었던 것이다. 문제를 가진 학생이 있을 때, 그 학생을 격려해 주기보다는 야단을 치는 것이, 오히려 그 학생을 낙인 찍는 것이 일반적이다. Erikson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의 ‘자존감 vs 열등감 또는 자율성 or 의기소침’의 단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학교내의 학업성취의 성공여부는 아이들의 성격발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사는 모든 학생들이 자존감을 갖고 한 인격체로서 열등감에 빠지지 않도록, 학생들을 격려하고 각 각이 다른 재주를 가진 소중한 존재임을 가르치며, 아름다운 언어를 쓰도록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교육의 진정한 목표를 실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표, 교육의 의미는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에 의하여 인간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아이들을 격려하고 더 나은 방법으로 교육함으로써, 그들의 지식을 쌓는 일뿐 아니라, 인간다운 모습, 자존감과 자율성을 갖고 한 사회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다.

또한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면서 내게 교육의 중요한 비밀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 것이 있는데, 바로 거위들이 에이미를 따르는 장면들이다. 거위새끼들은 에이미를 어미거위로 알고, 오로지 에이미의 곁에서 에이미의 행동을 따라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참된 교육을 위해 교사와 학생간의 신뢰는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시대 교사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라는 말을 할 만큼, 요즘 학생들은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고 선생님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것은 학생들의 도덕적, 윤리적 문제도 있겠지만, 참된 교사, 참된 스승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에이미가 거위들의 좋은 선생님, 좋은 어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에이미의 진실된 사랑과 따뜻한 관심, 그리고 그로 맺어진 신뢰감 때문일 것이다. 참된 스승이 되기 위해 우리는 신뢰할 만한 스승이 되어야 한다.
에이미가 거위가 부화하기 위해 따뜻하고 안락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었듯이, 우리도 미래의 꿈나무인 청소년들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따뜻한 말과 격려, 사랑을 주어야 할 것이다. 즉, 거위들의 안락한 보금자리는 따뜻한 사랑과 격려를 의미하는 것 이다.
또한 에이미가 거위들이 걸을 수 있게 또 날 수 있게 가르치기 위해, 자신이 앞장서서 직접 뛰고 직접 비행을 하였듯이, 우리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써의 학덕을 겸비해야 하며, 말보다는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는 교육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지각하지 마세요” 라는 말을 하기보다 직접 교실에 일찍 도착하여 학생들을 맞아주며 학생들의 모범이 되는 선생님이 있다면, 학생들은 그 선생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따르게 될 것이다. 이처럼 교사는 지식만을 가지고는 참된 스승이 될 수 없다. 학생들을 향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서로를 신뢰하는 믿음은 교육의 기본 요소가 되는 것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어미거위인 에이미와 새끼 거위들의 멋진 비행이 비춰진다. 이는 내게 찡한 감동을 주었는데, 교육도 한 편의 영화와 같단 생각을 했다. 과정은 결코 쉽고 순탄하지는 않지만, 최후 학생의 성장과 성숙은 교사의 노고를 잊게 하고, 모든 것을 아름답게 비춰주기 때문이다. 교사를 준비하는 학생으로써, 가치 있는 일을 준비하는 자로써, 소망을 갖고 준비된 스승이 되도록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영화감상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세 사람을 살해한 사형수(문윤수)와 세 번의 자살을 시도했던 여자(정유정)의 만남을 다루고 있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증오로 가득 찬 두 남녀가 일주일에 한 번, 교도소에서의 만남을 통해 서서히 마음을 열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삶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인 것이다.

이 영화를 사회복지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첫째로 극 중 ‘유정’의 역할은 실질적으로 교정 복지의 한 영역으로 사회복지사가 개입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교도소는 커다란 조직체인 사회를 움직이고 유지하기 위한 엄격한 시스템중의 하나이다. 이 분야는 국가가 개입하고 있는 예민한 부분이기 때문에, 접근 자체가 어려워 교정 복지의 발전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영화에도 비쳐지듯, 교정복지는 종교지도자의 면담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돕거나, 실무자가 간단한 사회적 기술교육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면접을 통한 상담이 있다 해도, 대부분 전문 상담에 대한 훈련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설사 훈련을 받았다 하더라도 종교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하기 때문에, 무교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성직자라는 직위에 대한 반감이 있을 수 있다. 실제 교도소라는 현장에서의 복지는 열악하고 미약한 것이 현실이지만, 나는 사회복지의 진정한 실현을 위해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 교정 복지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도록, 또한 모든 사회구성원이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조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범죄자는 범죄의 행위로 인한 낙인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클라이언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범죄인이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한 책임이나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사회복지사로써 클라이언트(범죄인)의 재활과 사회화를 돕고, 결국은 지역사회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범죄인에게 비전문적인 상담이나 원조를 할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치료 및 원조 제공을 위해 사회복지사의 전문적인 개입이 필요함을 발견할 수 있다.

둘째, ‘유정’과 ‘윤수’와의 만남(상담)을 client에 대한 사회복지사의 개입이었다고 가정한다면, 사회복지사는 다양한 윤리적 딜레마를 겪게 된다. 윤리적 딜레마란 전문적 사회복지사가 사회복지를 실천하는 데 있어서 주요 가치의 의무와 임무들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말한다. 즉 가치가 구체적 행위로 나타나는 다양한 의무와 임무들 중에서 무엇이 우선되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경우이다.

첫 번째 사회복지사가 겪게 되는 윤리적 딜레마는, 클라이언트의 모호성에서 오는 ‘클라이언트(client)는 누구인가’하는 갈등이다. 영화 속 에서 ‘유정’과 사형수인 ‘윤수’와의 상담은 사형수를 클라이언트로 보고, 그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윤수(사형수)가 살해한 피해자의 유가족이 클라이언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수녀님(유정의 고모)이 유가족인, 피해자의 어머니를 만남으로써 피해자의 어머니와 윤수(사형수)가 만남을 갖도록 자리를 마련한다. 이 자리를 통해 윤수는 울며, 자신의 잘못을 눈물로 사죄하고, 피해자의 어머니는 종교적 신념으로 윤수를 용서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하지만, 피해자 유가족의 삶의 질 향상과 심리적 안정이라는 문제해결을 위해, 사회복지사는 정서적 안정을 위한 치료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홀로 생계를 유지하는 할머니를 위해 경제적 원조제공을 위한 사회복지서비스 연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사회복지사가 사회복지를 실천할 때 누가 클라이언트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클라이언트에 따라 제공해야 할 서비스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사회복지사가 직면하게 되는 윤리적 딜레마는 사회복지사와 클라이언트간의 심리. 사회적 관계에 따른 것이다. 사회복지사의 윤리강령에는 클라이언트와의 부적절한 성관계에 대한 윤리방침이 제시되어 있지만, 사회복지사와 클리이언트가 갖는 사회적, 비성적인 관계에 대하여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다.
영화 속 에서 비춰지듯, 실제 현장에서 클라이언트와 사회복지사가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가운데 사랑에 빠지는 일이나, 상담 중에 사회복지사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일은 쉽게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한 분야의 전문가로써, 사회복지사는 철저한 자기 인식을 기초하여 적절한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복지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 내면에 자신의 아픔이 있을 수 있지만, 자기 성찰을 통한 자신의 상처를 발견. 치유하는 준비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자기인식이란 자신의 가치관, 과거의 경험, 관심사 등을 잘 인식하여 자신의 이러한 특성들이 클라이언트의 잠재력을 방해받지 않도록 하여, 성공적인 원조를 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Bill의 자질론’에 따르면, 몇가지 자기 성찰을 위한 질문을 제시한다.
1. 나는 자신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있나?
2. 자신의 기본 욕구를 어떻게 처리하나?
3. 나의 가치체계는 무엇이며, 어떻게 내 행동과 대인관계를 규정하는가?
4. 내가 생활하며 일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
5. 자신의 생활양식은 무엇인가?
6. 나의 기본철학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을 통해 사회복지사 자신에 대한 이해와 치유를 하라는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과정이 다른 사람을 사랑을 하기 위해서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하듯, 훌륭한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지식이나 기술을 연마하는 일에 앞서 준비해야 할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사회복지사의 약점을 강점화 할 수 있는 좋은 과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복지사에게 상처가 있을 때, 자기와 동일한 사연을 갖고 있는 클라이언트를 만날 경우, 당황하거나 감정의 큰 변화를 일으키기가 쉽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치유가 있을 경우 오히려 탁월한 사회복지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복지사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클라이언트의 심정을 잘 이해하고, 진심으로 클라이언트를 도울 수 있는 가슴으로 일하는 사회복지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철저한 자기이해는 중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영화 속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이 담겨있는데, 이것은 청소년기가 매우 중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윤수’가 사형수가 되기까지의 삶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가 어둠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가정의 불화와 가난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윤수의 어린 시절, 윤수는 어릴 적 부모님에게 버림받고, 눈이 먼 동생의 죽음까지 맛보게 된다. 만약 그 시절 사회복지사가 있었다면, 그들은 보호받아 마땅한 아이들이다. 하지만, 어린 두 형제는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위험에 노출되어 슬픈 결말을 짓게 된 것이다. ‘유정’ 역시 ‘윤수’처럼 삶에 희망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녀가 윤수와 다른 점은 타인을 살해하지 않았다는 것일 뿐, 자신의 삶을 끊기 위해 3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었다. 그 배후를 살펴보면, 15살에 사촌오빠에게 강간을 당했지만, 그것을 전혀 이해해주지 않고, 놀람의 기색조차 없이 그냥 참으라고만 말했던 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있었다. 이들의 삶을 보면, 어렸을 때의 상처가 성인이 된 그들의 삶에 나쁜 영향을 미침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소년은 미래 사회의 중심이 되는 구성원, 급변하는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혹은, 청소년은 미래의 꿈나무이기 때문에 우리는 청소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 것들도 맞는 말이지만, 청소년이 겪고 있는 ‘사춘기’는 인생 전반을 미루어 볼 때 매우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청소년은 매우 중요한 존재, 특별한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청소년 복지는 매우 중요하며, 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복지를 하고 싶다.
아무런 선택의 여지 없이 주어진 우리의 삶에는 다양한 배경이 펼쳐져 있다. 어떤 아이는 아주 부유한 집의 딸로, 어떤 아이는 아주 따뜻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게 되지만, 또 어떤 아이는 어떠한 잘못도 없이 아주 가난한 가정, 부모님의 사랑과 보살핌에 목말라 하는 아이로 태어나게 된다.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의 대두로 발생한 연속적 불평등 순환의 고리는 기회의 불평등, 사회적 능력의 격차, 결과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악 순환의 고리를 이어가고 있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 사회는 청소년을 사회적 위험에서 보호해야 하고, 그들의 부모가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청소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어야 한다. 이것이 청소년 복지인 것이다. 이 중에서도 나의 구체적인 목표는 청소년 상담을 통한 임파워먼트(empowerment)를 하는 것이다. 나는 상담(mentoring)은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멘토(mentor)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삶의 희망을 줄 수도 있는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영향력은 ‘말의 힘’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에서도 ‘어떠한 말을 하느냐’에 따라 물의 결정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사랑•감사’라는 글을 보여준 물에서는 완전한 아름다운 육각형 결정이 나타났지만 ‘멍청한 놈’ ‘바보’ ‘짜증나, 죽여버릴 거야’ 등과 같이 부정적인 말에는 마치 어린애가 학대를 당하는 듯한 형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의 70퍼센트가 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가 어떠한 말을 해야 하는지, 또 그 말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뿐 아니라, 영화 속에서도 상담의 아름다운 결실을 발견 할 수 있다. 이는 ‘윤수’와 ‘유정’은 일주일에 한번, 특별한 조명이나, 멋진 풍경, 분위기 있는 음악과 같은, 어떠한 장치도 없는 건조한 교도소의 면회소에서의 만남으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평생을 살면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살고 싶다’라는 삶의 희망을 갖게 된 것, 그리고 결국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 것에 있다.

사실, 내 인생의 가장 큰 꿈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어떤 일을 하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 왔다. 그래서 한 때는 작가가 되어 책을 통해 좋은 영향력을 주고 싶다라는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성장하고, 사회를 보면서 세상에는 참 많은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주 부유하고 모자람 없이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힘없고, 상처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부유하고 모자람이 없는 사람들은 내가 굳이 눈을 돌리지 않아도, 그들을 보는 사람이 참 많았다. 하지만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을 향해 눈을 돌리는 사람은 별로 없었으며, 그들의 삶은 내일의 향한 희망과 설렘조차 없는, 정말 말 그대로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 다수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받은 사랑을 그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었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이 영향력에 매료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게 된 것이다. ‘윤수’가 ‘유정’을 만남으로 삶의 소망, 내일을 향한 소망을 갖게 되었듯, 나도 나를 만나는 사람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그리고 그 존재가 얼마나 가치 있고 아름다운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주고 싶다.

나는 맑고 순수한, 때로는 상처로 앓고 있는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좋은 멘토(mentor), 좋은 조력자가 되고 싶다. 그렇다면 그들의 좋은 멘토(mentor)가 되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문제의 해결책 역시 영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윤수’와 ‘유정’ 그들이 진심으로 서로를 대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들은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게 되고, ‘윤수’의 철저한 비밀보장, 정말 말 그대로 비밀을 죽을 때까지 지키겠다는 사형수가 준 신뢰에 있다. 유정이 자신의 아픔을 꺼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윤수가 보여준 신뢰감은 유정의 마음을 열게 한 것이다. 나는 ‘이것이 사회복지사가 본받아야 할 자세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사회복지사와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에서 가장 기초된 것은 진실된 사랑이고, 서로를 신뢰하는 신뢰감 형성일 것이다. ‘사랑의 기술’의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이, 현대의 여러 문제의 근원은 사랑의 해체에 있고, 그 문제의 해결책은 사랑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 윤수와 유정이 삶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고, 그들의 상처의 치유의 약이 된 것처럼 말이다. 나는 바람직한 영향력을 전하기 위해 진심으로 클라이언트(청소년)를 사랑해야하며, 진심으로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시한부의 사형수가 했던 비밀보장을 하는 사회복지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클라이언트는 마음 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자신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내 꿈은 청소년을 상담하는, 청소년에게 밝은 미래를 주는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다. “말”이라는 엄청난 힘을 가진 도구로, “사랑”이라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되는 약으로, 멋진 성인이 될 그들을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이다. 과제를 하면서 사회복지의 몇몇 개념을 다시 되세기고, 내 미래를 향한 기대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영화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그를 바탕으로 사회복지를 접목시키는 일은 어려우면서도 참 흥미로운 일이었던 것 같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더 많은 작품들을 보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